(뉴스인020 = 김나현 기자) 미국의 천재 여성 시인이자 영미문학계의 신화 실비아 플라스의 격정적인 삶과 예민한 영혼을 기록한 책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가 국내 번역 20주년을 기념해 리뉴얼 특별판(문예출판사)으로 출간됐다.
'지독히 아름답다', '감탄을 자아내는 글쓰기'. 실비아 플라스에 쏟아진 언론의 찬사다. 그녀가 남긴 시와 소설은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의 독자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플라스의 열정과 비범한 문학성 만큼이나 주목받은 것이 있으니 바로 그녀의 비극적 자살에 얽힌 수수께끼다.
왜 촉망받던 젊은 여성 시인이 36살 젊은 나이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해야만 했을까. 플라스가 스미스 대학에 재학한 1950년부터 죽기 직전인 1962년까지의 일상과 생각을 면밀히 기록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그녀의 진짜 삶을 확인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다.
아름다운 금발의 유망한 미국 여성 시인 실비아 플라스와 당대 최고의 천재 영국 시인 테드 휴스의 황금빛 로맨스는 테드 휴스의 불륜과 플라스의 자살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은 평단과 대중의 매혹에 반사되고 증폭돼 남성의 세계에 희생된 여성 예술가의 전형, 페미니즘의 기치를 든 피 흘리는 여신이라는 거대한 신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세상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플라스를 둘러싼 신화 역시 왜곡되고 폭압적이고 허구적인 부분이 있었다. 죽음과 순교의 신화화 과정에서 어머니이자 아내이며 투쟁하는 생활인이었던 실비아 플라스의 또 다른 모습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특별하다. 한 여성의 사적 기록임과 동시에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며 대중적 관음주의를 벗어나 플라스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의 도구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본 사람들은 그녀의 솔직함과 신랄함, 범속한 욕망에 당혹함을 느끼곤 한다. 반복되는 소통의 실패, 그로 인해 피어난 자기혐오와 타자에 대한 공격성은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 시인에게서 기대하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기 속에 담긴 이러한 치부는 오직 실비아만의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모두의 것이다.
추하고 표독스럽지만 끝없이 도움을 구하던 실비아 플라스의 치열한 생은 그녀가 맞닥뜨렸던 문제와 고민이 결국 보편적 인간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며 강한 연민과 공감을 자아낸다. 나아가 플라스의 특별한 문학적 감수성과 글쓰기에 대한 강한 열정, 욕구는 여성이 아닌 비범한 천재 실비아 플라스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가 국내 번역 소개된 지 20년이 지났다. 플라스의 작품보다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에 익숙함을 느끼는 독자라면 문예출판사가 출간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리뉴얼 특별판을 통해 평면적 신화에서 벗어난 한 시인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소중한 계기를 마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