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세상을 떠난 지 ‘64주년’ 추모 행사 - 억울한 그의 행보 ‘진실’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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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020 = 김성길 기자) 지난 10일 오후1께 이천시 호법면 안평리 선영 묘역에서 고{古} 이정재 회장 64주년 추모제 추진위원회에서 주최 하는 고인을 기리는 행사가 진행됐다.

 

행사를 진행하면서 누군가 지난날 이정재 회장의 행보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는 직접 정치를 해보겠다는 꿈을 꾸게 되는데 당시 그의 부하였던 낙화유수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60대 정도가 되면 대통령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했다고 하면서 옛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정치를 꿈꾼 이정재는 1958년 제4대 총선에서 고향 이천에서의 출마를 목표로 자유당 이천시 당 위원장이 취임했고 그때부터 민심을 얻기 위한 치밀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지역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면장들에게는 자전거를 한 대씩 사 주는가 하면 살림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는 환갑잔치를 열어 주었고 또한 아이들에게는 고무줄을 나눠주며 마치 동요처럼 이번에는 이정재를 뽑으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게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민심을 다져온 이정재는 당선을 확신했으나 그는 자신이 아버지로 모셔온 이기붕에게 뒤통수를 맞게 되는데 그 이유는 1958년 총선을 앞두고 이기봉은 서울 서대문구에서 출마하려 했으나 여러 정황상 당선이 불확실해지자 결국 당선 가능성이 큰 이천으로 지역구를 옮기려 했던 것이었다

 

이기붕에 이러한 결정에 그는 강하게 반발해 보았으나 조직을 날려버리겠다고 이기봉이 경고하자 결국 이정재는 출마 포기 각서를 쓰고 이천을 넘겨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뒤통수를 맞은 그는 북악산 쪽에 집을 지어 야인으로 살아갔고 이정재의 빈자리는 그의 오랜 동생 임화수가 차지하여 정직 깡패 짓을 이어갔으나 결국 이승만 정권은 1960년 부정 선거가 도화선이 된 4·19 혁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승만 정권이 막을 내리며 야인으로 살던 이정재는 두 차례 구속된 적이 있었으나 모두 가벼운 형량으로 풀려났고 어수선함이 전국으로 이어지던 그 무렵 대한민국에는 또 다른 세력이 나타나게 된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를 비롯한 군인들은 5.16 군사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고 직후 군부세력은 군사 정변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회 정화 사업을 벌이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정재를 비롯한 정치깡패들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붙잡힌 이정재는 1961년 5월 21일 함께 붙잡힌 범죄자들의 맨 앞에서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플래카드를 메고 서울 시내를 돌았다. 이후 혁명 재판에 넘겨진 이정재는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았고 1961년 10월 19일 44살의 나이로 억울한 한을 가슴에 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정재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64주년 그의 삶의 안 좋은 시선도 많지만 해마다 많은 후배와 지인들이 그의 빈소를 찾는다.

 

2023 지난해 추모식 유인물을 살펴보며 나는 사형당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한목숨 바쳐 어수선한 나라가 편안해진다면, 나는 기꺼이 이 한목숨 바치겠다.” 故 이정재 회장이 사형집행 전 남겼다는 말로서 지난 63주년 추모제 회보에 실린 유명한 글이다

 

이미 고인이 된 이정재를 억울하게 죽었다고 여기는 추모자들은 "이제 하늘의 별이 되어 후배를 내려다 보시며 오늘의 추모제를 지내는 당당하고 굳건히 살아가는 후배들을 보며, 몸은 비록 가시었으나 회장님의 정신만은 살아서 지금도 후배들을 격려하고 돕고 계심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면서" 오늘 이렇게 회장님의 64주기를 육신이 누워 계신 이곳에 찾아와 고개 숙여 애도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인사드린다."라고 전했다.

 

이번 추도식에는 ▲김윤수 스님,▲ 김상철 추진위원장, ▲이종남 추진위원장, ▲홍광식ㆍ▲이한영ㆍ▲임화용ㆍ▲김준한ㆍ▲유정ㆍ▲송상용ㆍ▲장바우ㆍ▲이충근ㆍ▲신문섭ㆍ▲박정일 부위원장, ▲지만천 고문, ▲장상봉 트레시스 본부장, ▲오상환 회장 등 200여 명이 대거 참가해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 1부 행사는 홍광식 부위원장이 사회를 맡았으며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이정재 회장 약력 소개 ▲추모기도 ▲인사말▲추도사 ▲임명장 수여▲추모 공연 ▲유족인사 ▲헌화 및 분양 순으로 진행됐다.

 

▲전국신문언론노동조합 위원장’으로부터 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의 ‘위촉장’과 ‘위촉패’을 수여받고 있다

 

2부 행사에서는 추모제를 기리기 위해서 평소 고인이 좋아하는 음악(섹스폰)연주로 넋을 달려고 이어 ▲ 이정재 회장 ‘64주년 추모제 추진위원회' 홍광식 부위원장은 ▲‘김성길 전국신문언론노동조합 위원장’으로부터 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의 ‘위촉장’과 ‘위촉패’을 수여받고 언론인들의 기량에 앞장서서 도·시민의 알 권리 충족에 온 힘을 다하여 이정재 선배님같이 억울하게 죽임을 맞이하는 최후가 없도록 전국에 있는 언론인의 참된 보도로 책임을 다하는 언론인의 뿌리가 될 것을 다짐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이정재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64주년이 됐다. 그의 삶의 안 좋은 시선도 많지만 해마다 많은 후배와 지인들이 그의 빈소를 찾는다. 그 와중에서도 그 옛날 후계자로 알려진 동대문사단의 이정재 회장의 막내 동생 정종원 (오따 큰밭)씨가 타계하기 전까지 추모 행사를 주도해 왔다. 그 옆에는 직계 아우로 알려진 ▲김상철, ▲김윤수, 이종남 씨 등이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위원장으로서 함께 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잘 모이지 않던 원로 주먹들이 이번 추도식에 대거 참석한 것도 이례적이며. 이날 추도식에서 이들은 지난 1961년 5·16 쿠데타 정권에서 정치깡패로 지목돼 사형당한 이정재의 죽음이 군사정권의 희생양이라는 이문제를 지금도 안타까워하며 진정한 진실을 밝힐 수 없는 미스터리 사건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참배를 마치고 내려가는 조문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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