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인020 = 김성길 기자) 서울역사박물관은 세계적 사진가 에드워드 버틴스키의 40년 작업을 집대성한 대규모 사진전 《버틴스키: 추출/추상》을 오는 12월 13일부터 2026년 3월 2일까지, 아시아 최초로 선보인다.
한국–캐나다 상호 문화교류의 해를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산업과 자원 개발의 현장에서 채집된 ‘추출’의 장면들이 하나의 ‘추상’적 이미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 활동이 재구성해 온 지구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버틴스키: 추출/추상》은 영국 런던의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 이탈리아 베니스의 M9(Museo del ‘900)에 이어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순회전으로, 버틴스키 전시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기획된 대표적인 시리즈이다.
전시 제목 ‘추출/추상’은 버틴스키 예술세계의 두 축을 나타낸다. ‘추출’은 지구에서 자원을 얻는 산업활동을, ‘추상’은 추상회화의 언어를 차용한 그의 시각적 미학을 뜻한다. 특히 ‘추상’은 본래 대상에서 본질을 끌어내는 개념을 지니고 있어, ‘추출’과도 의미적으로 연결된다. 전시 제목은 산업 현장을 기록하면서 이를 시각적 추상으로 전환해 온 버틴스키 작업의 방식을 함축한다.
전시는 총 3부, 6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미학적 감각으로서의 작업,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산업 현장, 사진 매체의 실험과 확장이라는 세 개의 축을 통해, 각각 예술가·기록자·기술자로서의 버틴스키를 조명한다. 관람자가 추상적 미학을 먼저 경험한 뒤 그 이면의 맥락을 이해하도록, 감각에서 인식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따라 전시가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49점의 대형 사진과 8점의 초고해상도 벽화, 버틴스키가 사용한 카메라와 장비 15점이 이 세 축에 따라 배치된다.
제1부 ‘추상’은 20세기 초 추상미술의 등장과 산업화 이후 급격히 변화한 세계를 하나의 시선으로 교차시킨다. 버틴스키는 추상회화의 형식적 언어를 차용해 색채와 질감, 형식의 아름다움을 먼저 제시하지만, 곧 그것이 자원 채굴과 산업 노동의 현장임을 드러낸다. 아름다움과 불편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버틴스키 작업세계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제2부는 버틴스키 작업의 핵심 주제이자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에 남긴 변화를 정면으로 다룬다. 광물과 석유, 가스와 목재를 대규모로 채취하며 현대 문명을 구축해 온 과정에서 지구는 인간의 필요에 맞게 크게 변형됐다. 버틴스키는 ‘추출’ 산업, ‘제조업과 기반 시설’, ‘농업’과 ‘폐기물’ 산업 현장을 찾아가 인간이 만들어낸 ‘인류세’의 풍경을 기록한다.
버틴스키는 캐나다의 광산지대를 시작으로 중국의 제조업, 남아프리카의 자동차 공장, 칠레의 염전, 사막지대의 농업, 방글라데시의 선박 해체 현장 등 전 세계 가장 극단적인 산업 환경을 직접 찾아 기록해 왔다. 대형 관개 시설이 만들어낸 초현실적 농업 패턴, 노천 채굴 현장의 파편화된 지형, 해체 중인 선박의 거대한 구조물 등 압도적인 풍경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매료되어 온 ‘산업적 숭고함’으로 재편된다. 아름다움과 파괴, 효율성과 고갈이 공존하는 현장에서 그의 사진은 ‘인간은 지구를 자신에게 맞게 재구성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동시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풍경을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제3부 ‘프로세스 아카이브’는 사진 매체의 기술적 진화와 함께 버틴스키의 작업이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촬영, 드론과 위성 기술, 영화 제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카메라와 장비, 일기를 통해 창작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그는 항공촬영의 조감 시점 구도를 자주 활용했는데 이를 위한 드론 장비와 촬영팀과의 작업 이야기 등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들며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서 촬영된 미공개 작업 과정 사진들도 함께 소개된다.
버틴스키는 사진 매체와 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기술을 통해 예술을 확장하고, 예술을 통해 세계를 탐구하고 기록해 온 작가다. 그는 “우리가 소비를 위해 자연에서 끊임없이 자원을 얻는 현실과, 지구 환경을 염려하는 마음 사이에는 불편한 모순이 존재한다. 저에게 이 이미지들은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의 사진은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해 온 현실을 다시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며, 동시대 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도시역사박물관으로서 도시가 직면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성찰하며 시민과의 대화를 이어오고 있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 관장은 “도시화와 산업화의 압축 성장을 경험한 도시 서울에서 인류세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인류가 지구에 남긴 흔적을 시민들과 함께 되돌아보고, 앞으로도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모색하는 글로벌 환경 담론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마크 메이어(Marc Mayer, 전 캐나다 국립미술관장)와 함께하는 '큐레이터와의 대화', 버틴스키가 공동 연출한 영화 '인류세: 인간의 시대 Anthropocene: The Human Epoch'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어린이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다양한 연령층이 전시와 인류세 문제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개막일 13일 저녁 7시에 열리는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는 마크 메이어가 직접 전시 기획 의도와 버틴스키 작품에 담긴 미학과 메시지를 소개한다. 마크 메이어는 20년 넘게 버틴스키 작업을 연구하고 글로 남겨온 대표적 권위자이다. '인류세: 인간의 시대'는 버틴스키가 2018년 제니퍼 바이치월, 니콜라스 드 팡시에와 공동 연출한 영화로, 작품세계의 핵심 주제인 ‘추출’과 인류세의 현실을 영상으로 조명한다.
관람객은 오디오가이드를 통해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영어 해설은 작가 에드워드 버틴스키와 전시 큐레이터 마크 메이어가 직접 녹음해 작품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하며, 한국어 해설은 일상 속 재활용 실천으로 ‘쓰저씨’로 알려진 김석훈 배우가 참여해 전시의 의미를 더했다.









